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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리뷰 –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이민 서사와 연출·메시지 분석

by luire 2025. 4. 12.

2024년, 장강명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한국이 싫어서’가 개봉하며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제목부터 도발적인 이 작품은 단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불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땅을 살아가는 청년 세대의 답답한 현실과 탈출에 대한 욕망을 담은 깊은 서사로 관객에게 다가옵니다. 특히 뉴질랜드로의 이주를 선택한 한 여성의 시선을 통해 그려지는 ‘탈 한국’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선택인 동시에 시대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본 리뷰에서는 이 영화가 가진 서사의 구성, 연출 방식,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를 중심으로 ‘왜 우리는 이 이야기에 공감하게 되는가’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 포스터

청년 세대의 선택: 이민이라는 탈출구

‘한국이 싫어서’는 주인공 계나가 한국 사회에서 느끼는 불합리함과 개인적인 답답함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시작됩니다. 직장 내 위계, 성차별, 가족 간의 갈등, 불투명한 미래 등은 많은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의 단면입니다. 계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한 ‘반발’이나 ‘저항’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떠남’을 선택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선택을 단순히 ‘도피’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민이라는 주제를 통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자 ‘자기 자신을 위한 삶’으로 제시합니다. 특히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말없이 거리를 두고 떠나는 계나의 행동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실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뉴질랜드라는 공간은 이 영화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상징적 탈출구이자 ‘다른 가능성의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빡빡한 경쟁, 정답만 요구하는 사회에서 벗어나려는 청년 세대의 심리를 정밀하게 반영하며, 관객은 자연스럽게 계나의 시선을 따라가게 됩니다.

연출 스타일: 절제된 시선과 일상의 누적

연출 방식은 이 영화의 정서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입니다. 감독은 계나의 감정을 과도하게 설명하거나 드라마틱하게 부각하지 않습니다. 대신 긴 호흡의 롱테이크, 대사의 공백, 반복되는 일상의 이미지들을 통해 ‘지루할 만큼 평범한 한국의 청춘’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계나가 새벽 지하철을 기다리며 멍하니 앉아 있는 장면입니다. 아무런 사건도 발생하지 않지만, 관객은 그 침묵 속에서 이 인물이 느끼는 무기력과 피로감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에게 설명하지 않고 ‘느끼게 만드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는 단순한 영화적 기법을 넘어, 청년 세대의 현실을 묘사하는 하나의 윤리적 태도이기도 합니다. 격정적인 대사보다 침묵, 사건보다 공백을 통해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 방식은, 오히려 계나의 이주 선택이 얼마나 절실한 것이었는지를 더욱 깊이 전달합니다.

메시지 분석: 탈 한국이 아니라 ‘내 삶을 선택하는 용기’

표면적으로 이 영화는 ‘한국이 싫다’는 전제를 제목부터 던지지만,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조건적인 비난’이나 ‘반국가적 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계나는 어떤 거대한 혁명을 이루거나 사회를 바꾸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저 자신이 살고 싶은 방식대로 삶을 선택했을 뿐입니다. 이 선택은 불확실하고 고독하며, 때론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기 삶의 주체가 되려는 노력’으로 해석됩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계나가 바다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상징적입니다. 타국에 와서도 외로움은 존재하고, 이상과 현실은 다르지만, 그녀는 더 이상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탈출에 대한 부정적 시선’에 의문을 던집니다. 떠나는 이들을 비판하기보다, ‘왜 떠나야만 했는가’를 묻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영화는 조용하지만 강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결론

‘한국이 싫어서’는 단순한 이민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지금의 청년들이 느끼는 ‘존재의 피로감’,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 ‘자기 삶에 대한 결정권의 부재’를 정교하게 그려낸 영화입니다.

화려한 액션이나 극적 전개 없이도, 이 영화는 한 인물의 조용한 선택을 통해 수많은 관객의 마음에 묵직한 공감을 남깁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떠나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때로는 유일한 용기일 수 있다는 것을 ‘한국이 싫어서’는 담담하게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