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개봉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집 수록 단편 '재희'를 원작으로 하여, 이언희 감독의 섬세한 연출 아래 스크린에 옮겨진 작품입니다. 김고은과 노상현이 주연을 맡아 서울이라는 대도시 속에서 서로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두 인물이 어떻게 친구가 되고, 또 연대하며 성장하는지를 진지하고 따뜻하게 담아냅니다. 이 작품은 성소수자와 여성의 정체성, 사회적 편견, 그리고 대도시의 익명성과 현실을 통해 '진짜 나'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묻는 페미니즘 감수성 높은 영화입니다.
젠더: 성소수자와 여성의 교차 서사
<대도시의 사랑법>은 전통적인 성별 이분법과 사회적 역할에 도전하는 두 주인공, 재희와 흥수를 통해 젠더와 정체성의 복합적 문제를 조명합니다. 재희는 자유로운 감성과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여성으로,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 자유로움은 곧 편견과 혐오, 고립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반면 흥수는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가다 재희를 만나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시작합니다. 이 두 인물은 서로를 통해 타인과 자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얻고, 서로의 삶에 깊이 관여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단순히 '퀴어'나 '여성 서사'라는 구분을 넘어서 교차적인 정체성의 복잡함을 담아낸다는 것입니다. 특히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보면, 재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사회적 규범에 억눌리며, 흥수는 남성이지만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고립됩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억압을 겪고 있음에도, 연대를 통해 상처를 공유하고 치유하는 관계를 형성합니다. 이는 젠더 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적 감수성과 포용력을 넓히는 데 있어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서울: 대도시가 가지는 이중적 의미
서울은 이 영화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닌, 또 다른 주인공처럼 기능합니다. 특히 이태원이라는 공간은 등장인물들이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현실과 이상이 교차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표현됩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는 익명성과 자유,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차별과 편견, 외로움을 배태한 공간입니다. 주인공들이 겪는 혼란은 이 도시의 이중성 속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며, 관객으로 하여금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의 외로움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이해하게 만듭니다.
또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안전한 공간’을 찾아 떠도는 주인공들의 여정은 현대 청년들이 겪는 정서적 유랑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재희와 흥수는 함께 동거를 시작하면서 서로의 ‘안식처’가 되지만, 도시의 압력과 사회적 시선은 그 관계마저 위협합니다. 특히 서울의 거리, 건물, 카페, 클럽 등 공간 하나하나가 두 사람의 심리적 상태를 반영하는 장치로 활용되며, 도시의 시각적 언어가 감정선과 맞닿는 지점이 탁월하게 그려집니다.
연대: 진정한 우정과 성장의 서사
<대도시의 사랑법>은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상처받은 두 인물이 서로를 통해 성장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깊이 있게 탐색합니다. 재희와 흥수의 관계는 ‘베스트 프렌드’라는 말로 단순히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얽혀있습니다. 사회적 억압과 개인적 상처 속에서, 이들은 서로의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고, 때로는 거울처럼 자신의 모습을 비추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우정을 넘어선, 정체성의 인정과 존재의 연대를 상징합니다.
특히 이언희 감독은 원작의 시선을 재해석하여, 여성 서사와 성소수자 서사를 병렬적 혹은 분리된 것으로 그리지 않고, 교차된 구조로 자연스럽게 엮어냅니다. 김고은은 복잡한 감정선과 내면의 진폭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재희를 설득력 있는 캐릭터로 완성시키고, 노상현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에서 깊은 진정성과 섬세한 감정 연기를 선보여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연대의 메시지는 단순한 '서로를 이해하자'는 수준을 넘어서, 서로 다른 조건과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어떻게 공감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 사회에서 매우 필요한 가치이며, 페미니즘의 실천적 가치와도 밀접하게 닿아 있습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사회적 소수자의 서사를 중심으로, 현대 대도시 속 청춘들의 삶을 진지하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젠더와 정체성, 공간과 연대라는 다층적 메시지를 담아내며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이 시대,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이 영화를 통해 나와 다른 삶을 이해하고, 또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