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개봉한 영화 ‘원더우먼(Wonder Woman)’은 DC 확장 유니버스(DCEU) 내에서 여성 슈퍼히어로가 단독 주인공으로 등장한 첫 블록버스터 작품으로, 개봉 당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특히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전쟁이라는 남성 중심의 서사에 여성 영웅이 중심인물로 등장하며, 기존 슈퍼히어로 장르의 구성을 전환한 시도로 평가됩니다. 본 리뷰에서는 원더우먼의 스토리 구성과 감정선, 여성 서사의 확장, 그리고 페미니즘적 메시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다이애나의 전쟁: 여성 영웅의 탄생과 감정의 결
원더우먼의 주요 무대는 1차 세계대전입니다. 고대 아마존의 전사 다이애나는 인간 세계의 갈등에 뛰어들며, 슈퍼히어로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습니다. 처음에는 인간의 선함을 믿고 이상주의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전장의 참혹함을 통해 인간성과 정의에 대한 복잡한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노맨스 랜드에서의 전투 장면은 영화의 전환점으로 작용합니다. 다이애나는 외부의 시선이나 명령이 아닌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전장에 뛰어들며, 처음으로 본격적인 히어로로서 각성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여성 주인공이 구조받는 대신, 능동적으로 세상을 구하는 존재로 설정됐다는 점에서 중요한 상징성을 지닙니다.
다이애나와 스티브 트레버의 관계 또한 기존 히어로 영화와 차별화됩니다. 남성 캐릭터가 보호자가 아닌 조력자의 역할을 하며, 여성 주체가 감정적・서사적 중심에 놓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전통적인 남성 주도 서사의 전환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됩니다.
감정선과 서사 구조: 전쟁영웅의 내면과 성장
다이애나의 서사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구조를 따르면서도, 감정의 흐름과 도덕적 갈등이 주요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그녀는 아마존이라는 보호된 세계에서 자라났으며, 인간 세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극한의 현실을 마주하며,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 그리고 희생과 연대의 이면을 함께 경험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단순한 액션 장면이 아닌, 내면의 변화와 성장으로 치환합니다. 클라이맥스에서 다이애나는 신으로 설정된 아레스와 대면하며, 전쟁의 근원이 인간 외부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갈등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녀는 복수를 선택하는 대신, 공감과 용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이며, 기존 남성 히어로와는 다른 해결 방식을 제시합니다.
이는 2030 여성 관객층이 공감할 수 있는 서사로 작용합니다. 물리적 전투보다는 감정적・윤리적 선택을 중심으로 구성된 원더우먼의 스토리는, 여성 히어로가 전통적 남성 영웅의 역할을 단순히 대체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페미니즘 시선에서의 원더우먼: 상징성과 진보성
원더우먼은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나타내는 작품입니다. 단순히 여성 히어로가 등장했다는 점을 넘어, 이 영화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전면적으로 전복합니다. 다이애나는 자신을 성적으로 과시하거나 대상화하지 않으며, 영화는 그녀의 외형보다 내면과 행동을 중심으로 조명합니다.
감독 패티 젠킨스는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여성 캐릭터를 소비의 대상으로 삼는 기존 시각을 배제하며, 다이애나를 철저히 주체적인 인물로 설정합니다. 이는 관객이 성별과 무관하게 캐릭터의 내면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며, 보다 건강한 감상 환경을 조성합니다.
아마존 전사들의 집단 전투 장면 역시 눈에 띄입니다. 이들은 남성의 지시를 따르거나 조연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독립적이고 전략적인 전투 능력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는 여성 간의 연대, 협력, 공동체적 가치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중요한 연출입니다.
원더우먼은 ‘여성도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수동적인 메시지를 넘어서, ‘여성이기에 가능한 히어로 서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폭력보다는 공감, 지배보다는 책임, 경쟁보다는 연대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이는 오늘날의 젠더 감수성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결론: 문화적 영향과 현대적 가치
원더우먼 2017은 단순한 슈퍼히어로 영화가 아닌, 시대적 변화와 젠더 담론의 전환을 보여주는 문화적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다이애나는 절대적인 힘만으로 세상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갈등을 이해하고, 희생을 받아들이며, 공감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히어로입니다.
이러한 여성 중심 서사의 등장은 단순한 다양성의 시도가 아니라, 콘텐츠 자체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사례가 됩니다. 원더우먼은 이상화된 존재가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영웅상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성의 리더십과 존재감이 조명되고 있는 현실에서, 원더우먼이 제시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2030 여성뿐 아니라 모든 세대가 이 작품을 통해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가치는 충분합니다. 원더우먼은 이제 하나의 영화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