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트맨》(2020)은 국가의 비밀 암살요원으로 활약했던 주인공이 돌연 평범한 웹툰 작가가 되어 살아가다, 우연히 자신이 그린 웹툰 때문에 과거의 세계에 다시 휘말리는 이야기를 담은 액션 코미디입니다. 전형적인 첩보물의 설정에 B급 감성과 웹툰적 상상력이 결합되며, 코믹한 액션과 가족 중심의 드라마를 통해 현실 가장들의 이중생활을 유쾌하게 풍자합니다. 특히 직장인 관객에게는 현실 공감과 스트레스 해소라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이중생활 설정이 주는 직장인 현실 공감
주인공 준(권상우)은 국정원의 비밀 암살 조직 ‘방패연’ 소속으로, 전설적인 살인 병기입니다. 고아로 자라난 그는 어릴 적부터 만화를 좋아했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고 싶어 했지만, 국정원에 의해 요원으로 키워지며 감정도 삶도 통제받는 기계적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암살과 작전 속에서 준은 인간으로서의 감정, 삶의 의미를 갈구하게 되고, 결국 작전 중 ‘사망 위장’으로 국정원을 탈출합니다. 몇 년 후, 그는 평범한 가족의 가장이 되어 웹툰 작가의 삶을 살아가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웹툰 은 연재가 중단되고, 원고료도 받지 못한 채 무능력한 가장으로 취급당하는 삶을 살고 있죠. 현실 속 준의 모습은 ‘숨겨진 능력자’라는 영화적 설정을 떠나, 수많은 현실 직장인들의 자화상과 겹칩니다. 현실에서는 가족의 기대, 사회적 책임, 경제적 압박에 짓눌리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회사에서는 매일 성과를 요구받고, 집에서는 무언의 희생을 요구받으며, 개인의 정체성과 감정은 점점 억눌립니다. 《히트맨》 속 이중생활 설정은 이 같은 직장인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또한, 영화는 단지 웃음을 위한 설정이 아니라,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민을 정면으로 드러냅니다. ‘국정원 암살요원이 웹툰 작가가 되려 했다’는 설정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든 사람들의 딜레마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코믹 액션과 슬랩스틱: 웃음으로 무장한 현실 탈출
《히트맨》의 큰 재미는 액션과 슬랩스틱 코미디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방식에 있습니다. 영화는 초반부 다소 어둡고 진지한 첩보물의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곧 주인공 준의 어설픈 일상과 코믹한 말실수, 가족 내 소소한 갈등을 통해 경쾌한 템포를 만들어갑니다.
권상우는 기존의 강직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코믹한 연기를 선보입니다. 과거 국정원의 에이스였던 준이, 가정에서는 눈치만 보는 무기력한 아빠가 되어 변기를 고치다 실패하거나 딸의 숙제를 도와주다 말다툼하는 장면은 공감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냅니다.중반부 이후에는 본격적인 액션이 펼쳐지며 영화의 전개가 가속화됩니다. 준이 과거 국정원의 실체를 담은 웹툰을 술김에 업로드하면서 모든 사건이 시작되죠. 웹툰이 바이럴되면서 국정원은 기밀 유출로 판단하고 준을 제거 대상으로 간주합니다. 동시에 준에게 복수를 다짐했던 국제 테러조직도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그를 추적합니다.이런 설정은 일촉즉발의 위기를 만들어내면서도, 과장된 액션과 코믹한 연출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예를 들어, 집 안에서 펼쳐지는 총격전,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맨몸 격투 등은 지나치게 진지하지 않으면서도 스케일 있게 구성되어 보는 재미를 줍니다.영화가 제시하는 '능청스러운 슈퍼히어로'라는 인물상은, 사회의 기대와 무관하게 '자신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현대인의 이상형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나만의 능력'을 상상하고 싶을 때, 《히트맨》은 가벼운 판타지를 선사합니다.
가족과 직장 사이, 웃기지만 진지한 균형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단순한 첩보물의 전개보다도, 가족과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진심에서 비롯된 성장에 있습니다. 준은 가족을 속이면서 살아왔지만, 결국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고백해야 하는 순간과 마주합니다. 아내는 충격과 분노 속에서 준을 비난하지만, 점차 그의 진심과 선택의 무게를 이해하게 됩니다. 딸은 아버지의 웹툰을 통해 그를 다시 보게 되고, 처음엔 실망했지만 결국 응원하게 되죠.이러한 서사는 단순한 가족 영화의 클리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가정의 역할 변화와 소통의 중요성을 함께 다룹니다. ‘가족을 위해 일한다’는 명분 속에서 종종 가족과 소통을 잊고 사는 많은 가장들에게, 《히트맨》은 따뜻한 일침을 날립니다.또한 가족이 단순한 배경이나 설정이 아니라, 스토리의 핵심 동기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깊이를 더합니다. 단순히 악당을 처치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의 감정적 충돌과 이해가 극복되어야만 진정한 해피엔딩이 완성됩니다.이는 결국 ‘일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일터에서 아무리 능력을 인정받고 화려한 성과를 내더라도, 가족 안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진심을 나누지 못하면 진짜 행복한 삶은 아니라는 점을 영화는 유쾌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웃음, 감동, 해방감이 공존하는 직장인 힐링 영화
《히트맨》은 완성도 면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유치하거나 뻔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설정, 만화적 전개, 과도한 과장이 거슬리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깊이'보다는 '위로'에 초점을 맞춥니다. 직장인의 삶이 얼마나 숨 가쁘고, 가장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유쾌하게 풀어내면서, 그 무게를 웃음으로 덜어내는 힘이 있습니다.극장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래, 나도 꽤 멋진 사람이야”라고 속으로 말하게 만드는 영화. 바로 그런 영화가 《히트맨》입니다. 진지함과 유머를 동시에 잡은 이 영화는, 명절이나 휴일에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도 부담 없고, 혼자서도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는 코믹한 힐링 무비입니다.